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쿄 국제공항 (문단 편집) == 역사 == [youtube(6C9yfp0HDOE)] 하네다 공항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도쿄도]] [[오타구]]의 예전 지명이었던 도쿄부 '''하네다'''에도미마치에서 따 왔다. 이름에 깃털([ruby(羽, ruby=はね)])이 들어간다고 해서 공항이라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원래부터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개항 이전 하네다는 모래만 잔뜩 있었던 곳으로 일부 토지가 일본항공대학교의 비행훈련시설 전용으로 되어있었을 뿐,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 이 부지에는 과거 [[케이큐 전철|케이힌 전기철도]]에서 1909년에 조성한 '하네다 운동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야구장, 테니스 코트, 육상 경기 트랙, 그리고 유원지를 갖추고 있었으나, 1917년에 수해를 맞는 바람에 대부분의 시설들이 파괴되고, 일부 [[일본의 실업야구|실업야구단]] 정도만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물류 운송을 위해 일본 정부가 이곳의 부지를 개인으로부터 매입하여 공항 개발 계획을 세우게 되면서 1931년에 민간 공항으로서 '도쿄 비행장'이 정식 개항하였다. 개항이라고 해 봤자 당시 항공 산업은 초창기인 데다 변변한 시설장비도 없었으며, 운임도 매우 비쌌기 때문에 승객 수요는 매우 적었다. [[파일:external/haneda-terminal60th.jp/035.jpg|width=700px]] 1950년 하네다 공항 레이아웃 1930년대 후반의 일본은 전시 체제로 돌입하게 되면서 그나마 좀 돌아가던 민간 수송은 사실상 모두 중단되었고, 하네다 공항도 일본군 관리하에 군용 비행장으로 이용한다. 자연히 추축국과의 연결이나 식민지로부터의 수송을 담당하게 되었고, 일본군의 비행훈련 기지로서도 사용되어 후반에는 연합군의 주요 폭격 대상지로 떠오르게 된다. 1945년 항복 이후 하네다 공항은 연합군의 관리 하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하에 미군이 전용 비행장으로 사용하였는데, 당연히 일본의 민간 항공사는 취항이 막혀 일체 영업활동을 할 수 없었고, 이 때다 싶은 연합국의 민간 항공사들만 이 공항에 취항하여 내·외국인을 실어 날랐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만 있었던 일본 정부가 아닌지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이후 비로소 일본의 민간 항공사들이 하네다에 재취항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일본항공]]은 하네다 - [[오사카 국제공항|이타미]](경유) - [[후쿠오카 공항|이타즈케]] 간 첫 민간 항공 정기편 운항을 시작하였다. [[파일:external/haneda-terminal60th.jp/061.jpg|width=700px]] 1960년대 터미널 빌딩 옥상의 모습. 당시의 하네다 공항은 도쿄의 새로운 명소로 방문하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뒤에 있는 기종은 [[일본항공]]의 [[보잉 727|보잉 727-100]]. 이윽고 1952년 마침내 하네다 공항은 일본 정부로 반환되었지만, 아직까지 핵심 비행시설은 미군이 관리하고 있어 민간 공항으로서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특히 1950년대 들어 이 공항은 급격한 확장을 겪게 되는데, [[6.25 전쟁]]으로 일본의 경제 상황이 급격하게 호전되어 항공 수요가 대폭 늘어난 것이 원인. 물론 [[일본항공]]뿐만 아니라 외항사들도 대거 하네다에 취항하여 전쟁 특수를 한껏 누리게 되고, 이에 공항은 점점 혼잡해져 갔다. 1960년대 일본 경제는 점차 발전을 이루게 되고 [[1964 도쿄 올림픽]], 해외여행 자유화 바람을 타면서 하네다는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른다. 터미널 측에서는 나름 터미널도 확장하고 활주로를 하나 더 추가하는 등의 대책을 세웠으나 예상했던 것보다 항공 발착 횟수는 더 늘어나기만 할 뿐, 확장의 효과도 제한적인데다 주기장이나 유도로도 항공기의 대형화로 매우 비좁은 상황이었다. 이에 국토교통성은 공항 앞바다를 매립하여 하네다 공항을 확장하려 했으나, 당시 토목 기술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뿐더러 [[주일미군]]이 관리하는 요코타 공역이 당시에는 워낙 빡셌기에 더 이상 발착 횟수를 늘리는 것은 무리라 판단하여 할 수 없이 당시 [[치바현]] [[나리타시]]에 있던 황실 목장에 [[나리타 국제공항|신 도쿄 국제공항]]을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파일:external/haneda-terminal60th.jp/081.jpg|width=700]]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국제선이 이전하기 직전의 1970년대 하네다 공항 국제선 터미널 모습 [[파일:15284.jpg|width=700]] [[1974년]] [[4월 15일]] 하네다 공항에 착륙해 있는 [[대한항공]]의 [[보잉 747-200]][* HL7411으로 그 전 번호 HL7410은 대한민국의 첫 보잉 747인 [[융비호]]다. 즉 이 기체는 대한민국에 두 번째로 등록된 747이다.]. 뒤에 [[전일본공수]]의 기체와 [[일본항공]] 기체가 보인다. [[1978년]] [[5월]] [[나리타 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하네다에 있던 거의 모든 국제선이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이전하게 된다. 다만 실제로는 국제선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1974년 일본이 중국과 수교한 후 항공편을 개설하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대만]]행 노선의 취급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중국 측의 압력(단항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중화항공]]기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달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을 고려해 중국 노선과 [[대만]] 노선의 시간대를 엇갈리게 배치하는 수준으로 대응하였으나, 중국민항이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이전한 후에는 중화항공을 하네다에 잔류시켜 아예 엇갈릴 여지를 차단하였다. 사실 중화항공은 이런 처우가 거꾸로 이득이 되어서, [[나리타 국제공항|나리타]] 대신 도심에서 가깝고 국내선 환승이 쉬운 하네다발 [[중화항공]]을 타고 출국하는 이용객이 많았다. 중화항공이 아예 하네다 경유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하와이 호놀룰루]]행 노선까지 만들어 굴렸을 정도였다. 물론 국제선이 [[나리타 국제공항|나리타]]로 이전했다고 해서 공항 상황이 마냥 여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198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엄청난 호황기를 이룸에 따라]] 국내선 수요도 대폭 늘어나게 되어 한가할 틈도 없이 또 다시 터미널과 활주로는 포화 상태에 도달한다. 거기다 터미널과 활주로가 주거지와 바짝 붙어 있었던 관계로 소음 문제로 인한 민원도 상당하여 활주로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도 자주 벌어졌다. 계속 버티긴 힘들었는지, 1984년에 공항 앞바다를 매립하여 공항을 이전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곧바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파일:external/haneda-terminal60th.jp/104.jpg|width=700px]] 1980년대 하네다 공항 레이아웃. 왼쪽에 구 터미널, 오른쪽에 새로 매립중인 부지가 보인다. 앞바다를 매립하는 공사는 말 그대로 난항의 연속이었다. 특히 해저 지반이 초연약지반이라 물렁물렁한데 하필이면 항만의 준설토나 각종 찌꺼기를 그 곳에다 처리하고 있었던 바람에 도저히 중장비는커녕 사람도 막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공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하네다 마요네즈층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물론 공사 관계자들만 사용하고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당시 마요네즈 회사들이 이 용어를 듣고 반발한 게 원인이다.] 샌드드레인 공법으로 20년동안 어찌어찌 지층을 안정화시킨 뒤에야 비로소 터미널 공사에 들어갔다. 매립된 토지가 워낙 광대한 터라, [[오타구]]는 기존의 [[세타가야구]]를 제치고 [[도쿄도|도쿄]] 23구 중 면적이 가장 넓은 구가 되었다. 1993년에 제1여객터미널이 완공되었고 노선 문제로 남아 있던 중화항공을 제외한 모든 국내선 여객기가 제1여객터미널로 이전했다. 당시 이 터미널에 붙인 이름이 '''[[빅 버드]](Big Bird)'''인데 2004년 12월에 제2여객터미널이 완공되면서 오늘날에는 하네다 공항을 지칭하는 총칭을 뜻하기도 한다. [[파일:haneda_intl_old.jpg|width=700px]] 이제는 전설로 남은 하네다 공항 구 국제선 터미널. 2010년에는 신 국제선 청사가 [[텐쿠바시역]] 인근으로 확장 이전함에 따라, 컨테이너 가건물 수준이었던 옛 국제선 청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국내선 제2여객터미널 보딩브릿지 3개를 증축했다. 2018년부터는 제2여객터미널에 탑승용 새틀라이트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버스로만 오갈 수 있으므로, 2터미널 46~49번 게이트를 이용하는 승객은 유의해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